지난달 25일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높이 50㎝ 달항아리가 탁자에 놓였다. 말갛고 깨끗한 아름다움. 그런데 흔히 보던 달항아리와는 조금 다르다. 보는 각도마다 서로 다른 색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자개(조개 껍데기를 썰어낸 조각)다.
“아름답네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그 우아함에 감탄했다. 이 작품은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선물한 류지안 작가의 ‘더 문 화이트’다.
지난 8일 한국을 방문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부인 유코 여사에게서도 이런 감탄사가 나왔다. 김 여사와 방문한 리움미술관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 전시에서다. 이들이 함께 바라본 것은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백자 ‘달항아리’. 이 작품은 절도범에 의해 300여 조각으로 깨졌다가 부활한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에 이은 일본의 ‘달항아리 외교’다.
‘한국의 정체성을 담은 자연스러운 미의 완성’. 영국 BBC는 지난 11일 달항아리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현재 영국 런던에서는 국내 작가들이 참여한 ‘달항아리: 말하지 않은 이야기’가 런던공예주간 동안 열리고 있다.
조선 후기 백자 양식인 달항아리는 어떻게 한국미의 상징이 됐을까. 사람들은 왜 달항아리에 열광할까. 미국 국빈 선물을 제작한 류지안(40) 작가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만났다. 국내 첫 상업화랑인 ‘반도화랑’이 있던 롯데호텔에서는 창립 50주년을 맞아 류 작가의 기획 전시 ‘온 더 패스 오브 타임’이 다음 달 27일까지 열린다.
류지안의 아버지
류지안의 아버지는 나전칠기 명인 청봉 유철현 작가다. 아버지 공방에서 뛰어놀던 류 작가에게 자개는 레고 블록만큼이나 익숙한 장난감이었다. 그러나 자개의 아름다움에 눈을 뜬 것은 한국을 떠나 미국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유학 생활을 할 때였다.
-어릴 때 꿈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런데 어떻게 자개를 이용한 작품을 하게 됐나.
“어린 시절, 자개는 내게 익숙함이었다. 그리 비싸지도 않았다. 친숙한 것의 소중함을 잘 모르는 것처럼, 당시에는 자개의 아름다움을 깨닫지 못했다. 그런데 뉴욕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 ‘나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등을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러다 자개를 재발견하게 됐다. 한국에서는 자개를 전통 공예 소재로 보지만, 반클리프 아펠 같은 세계적 브랜드들은 하이엔드 주얼리나 시계 등에 들어가는 보석으로 생각한다. 당시 미국에서는 일본의 젠스타일이 유행이었고, 일본인 작가들의 죽공예 전시도 열리고 있었다. 한국의 자개를 나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외국인에게 소개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나?
“바로 한국으로 돌아와 자개 세공 기법부터 배웠다. 전통 기법에 뿌리를 둬야 제대로 된 창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다음으로는 기존 전통 문양이나 주제, 색감 등을 바꿔보는 작업을 했다. 지금 내 작업은 각 분야의 장인 선생님들과 함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