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직관적 통찰

centmos 2022. 5. 27. 07:45
반응형
SMALL

대체로 심오한 신비적 경험은 오랜 준비 없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직접적인 직관적 통찰은 우리 모두의 일상 생활에서 경험할 수 있다. 우리는 누구의 이름이나 장소, 또는 어떤 단어를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기억해 내지 못하는 경우를 잘 알고 있다. 그것이 혀끝에 맴도는 상태로 있지만 곧장 튀어나오진 않는다. 그러다가 우리가 그것을 단념해 버리고 관심을 딴 데로 돌렸을 때 불현듯, 마치 섬광 속에서 우리는 그 잊었던 이름을 기억 해 낸다. 여기엔 사고 과정은 들어 있지 않다. 정말 갑작스러운 직각적인 통찰이다. 돌연히 무엇을 기억해 내는 이러한 예는, 우리의 근원적인 본질은 깨달은 부처와 같은 것이지만 우리가 그것을 잊어버렸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불교와 특별한 관련이 있다. 선불교의 학도들은 그네들의 본래 면목을 되찾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고 있는데, 이 본래 면목을 돌연히 기억해내는 일이 곧 개인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직관적 통찰의 또 다른 예로 농담이 잘 알려져 있다. 농담을 이해하는 그 눈깜짝할 사이에 우리는 '개오'의 순간은 경험한다. 이 순간은 무의식중에 자발하는 것이어서 설명으로나 지적 분석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직관적인 통찰이 익살의 밑바탕을 순간적으로 꿰뚫을 때에만 우리는 그 익살이 의도했던 웃을 터뜨리게 된다. 정신적 통찰과 농담의 이해 사이에 유사성이 있다는 것은 개오한 인사들에게는 틀림없이 잘 알려져 있을 터다. 그들은 거의 언제나 대다한 유머 감각을 보여 준다. 특히 선은 재미있는 이야기와 기담으로 가득차 있다. <도덕경>에는 "그것이 웃음거리가 아니라면 도가 되기에는 아직 불충분한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서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직관적 통찰은 보통 지극히 짧은 순간에 한한다. 동양적 신비주의에서는 그렇지 않고 그것이 긴 기간으로 연장돼 궁극적으로 부단한 깨달음이 된다. 이 깨달음을 위한 마음의 준비야말로 모든 유파를 초월한 동양 신비주의와 동양적 생활 양식의 많은 국면에 걸친 주목적이 되고 있다. 바로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인도와 중국과 일본의 오랜 문화사는 엄청나게 다양한 기예와 의식과 예술 형식을 발전시켜 왔다. 그것들은 모두 말의 가장 넓은 뜻에서 명상이라 불릴 수도 있다.

반응형
LIST